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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북정원
슬픔의 현 -도종환-열두 살이었을까 열네 살이었을까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듣다가 혼자 울었다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현악기 소리는창문을 빠져 나가 밤하늘로 가느다란 꼬리를 끌고 올라가곤 했는데나는 창틀을 두 손으로 잡고 가만히 울었다창 너머엔 어두운 것들이 광할한 밤바다처럼 출렁였는데거기 별이 여러 개 떠서 흘러 다녔는데어두운 물결 위에다 엄마라고 쓰고 나면눈물이 한 줄기 턱밑까지 내려왔다어린 날을 의탁했던 외가에는 형제가 많았지만 둘째 형은 엽총에 맞아 사슴처럼 쓰러졌고누나는 아이를 낳은 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누나는 털실로 스웨터 짜는 일을 잘했는데 그래서방 여기저기 색색의 털실 뭉치들이 굴러다녔는데그 실처럼 가늘고 긴 세월 동안눈물의 끈으로 나를 묶어 끌고 다닌 이는 누구일까노래를 보내 이 세상..
목동의 별 도종환 서쪽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쓸쓸하고동쪽 하늘을 바라보아도 쓸쓸한 날밤이 되자 큰 별 하나 떴다 양떼를 몰고 돌아오는목동들과 동행한다는목동의 별이 저 별 아닌가 싶다 지상에는 길을 잃은 이들이 많다길 잃어삶의 곳곳이 낭떠러지인 이들이 많다 별점을 치는 이들은형혹성이 전갈자리 심수성에 머물게 되어여름에는 운석이 비 오듯 쏟아지고크나큰 재앙과 변고가 있을 것이라 한다 지난 몇 해는 얼마나 참혹했던가은하수 왼쪽이 붉게 물드는 날이 많고재난의 소용돌이가 온 나라를 덮는다는 말의그 불길함에 다시 두렵고 무섭다 미자르별이라 했던가우리가 가는 길을 내려다보는그 별을 보며서로가 서로에게 간절한 저녁기도를 하고선한 씨앗들을 가난한 골목마다 심으면형혹성 그 별도 아슬하게 비껴갈 수 있을까 어둠은 깊고..
섬 도종환 당신이 물결이었을 때 나는 언덕이라 했다.당신이 뭍으로 부는 따스한 바람이고자 했을 때나는 까마득히 멈추어 선 벼랑이라 했다어느 때 숨죽인 물살로 다가와말없는 바위를 몰래몰래 건드려보기도 하다가다만 용서하면서 되돌아 갔었노라 했다언덕뿐인 뒷모습을 바라보며 당신은 살았다 했다당신의 가슴앓이가 파리하게 살갗에 배나올 때까지도나는 깊어가는 당신의 병을 눈치채지 못하였고어느 날 당신이 견딜 수 없는 파도를 토해 내 등을 때리고한없이 쓰러지며 밀려가는 썰물이 되었을 때놀란 얼굴로 내가 뒤돌아 보았을 때당신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거리로 떠내려가 있었다단 한 번의 큰 파도로 나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당신을 따라가다 따라가다그만 빈 갯벌이 되어 눕고 말았다쓸쓸한 이 바다에도 다시 겨울이 오고 물살이.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