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백무산

subook 2025. 6. 13. 01:26

격정



백무산



내가 유일하게 열광했던 스타는

육상선수 그리피스 조이너



그녀가 경기장 트랙을 달릴 때

티브이 앞에서 나는 완전히 넋을 잃었다



종마처럼 긴 다리와 잘록한 무릎과 발목

피스톤을 장착한 엉덩이의 근육들이

일시에 수십 기통의 격정을 점화시키며



긴 머리채를 저공 비행의 프로펠러처럼

바람에 휘날리며 거침없이 내달리던 흑인 여자



슬픈 나이 서른여덟에 그녀가 죽었단다

내게는 그녀가 출발선에서 태어나

꼭 백미터의 격정을 살고 간 것 같다

문득, 내 인생이 몇걸음이던가



사랑의 격정은 삶을 정화하고

자유는 거침없는 곳에서 오고

인생은 광야처럼 비어 있다



- 백무산 시집 <길은 광야의 것이다> 1999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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