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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북정원
백무산 본문
격정
백무산
내가 유일하게 열광했던 스타는
육상선수 그리피스 조이너
그녀가 경기장 트랙을 달릴 때
티브이 앞에서 나는 완전히 넋을 잃었다
종마처럼 긴 다리와 잘록한 무릎과 발목
피스톤을 장착한 엉덩이의 근육들이
일시에 수십 기통의 격정을 점화시키며
긴 머리채를 저공 비행의 프로펠러처럼
바람에 휘날리며 거침없이 내달리던 흑인 여자
슬픈 나이 서른여덟에 그녀가 죽었단다
내게는 그녀가 출발선에서 태어나
꼭 백미터의 격정을 살고 간 것 같다
문득, 내 인생이 몇걸음이던가
사랑의 격정은 삶을 정화하고
자유는 거침없는 곳에서 오고
인생은 광야처럼 비어 있다
- 백무산 시집 <길은 광야의 것이다> 1999