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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,수필

복효근

subook 2025. 4. 18. 22:55

능소화가 지는법

복효근



능소화는 그 절정에서
제 몸을 던진다

머물렀던 허공을 허공으로 돌려주고
그 너머를 기약하지 않는다

왔다 가는 것에 무슨 주석이냐는 듯
씨앗도 남기지 않는 결벽
알리바이를 아예 두지 않는 결백

떨어진 꽃 몇 개 주워 물항아리에 띄워보지만
그 표정 모독이라는 것 같다
꽃의 데스마스크

폭염의 한낮을 다만 피었다
진다
왔던 길 되짚어가고 싶지 않다는 듯
수직으로 진다

딱 거기까지만이라고 말하는 듯
연명치료 거부하고 지장을 찍듯

그 화인 붉다


*   *   *   *    *    *    *    *    *    *    *    *    *    *    *    *    *

뜨지 않는 별



      복효근





별이라 해서 다 뜨는 것은 아니리

뜨는 것이 다 별이 아니듯

오히려

어둠 저 편에서

제 궤도를 지키며

안개꽃처럼 배경으로만 글썽이고 있는

뭇 별들이 있어

어둠이 잠시 별 몇 개 띄워 제 외로움을 반짝이게 할 뿐

가장 아름다운 별은

높고

쓸쓸하게

죄짓듯 앓는 가슴에 있어

그 가슴 씻어내는

드맑은 눈물 속에 있어



오늘밤도

뜨지 않은 별은 있으리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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