시,수필

도종환

subook 2025. 6. 29. 01:15

슬픔의 현


    -도종환-


열두 살이었을까 열네 살이었을까
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듣다가 혼자 울었다
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현악기 소리는
창문을 빠져 나가 밤하늘로
가느다란 꼬리를 끌고 올라가곤 했는데
나는 창틀을 두 손으로 잡고 가만히 울었다
창 너머엔 어두운 것들이 광할한 밤바다처럼 출렁였는데
거기 별이 여러 개 떠서 흘러 다녔는데
어두운 물결 위에다 엄마라고 쓰고 나면
눈물이 한 줄기 턱밑까지 내려왔다
어린 날을 의탁했던 외가에는 형제가 많았지만
둘째 형은 엽총에 맞아 사슴처럼 쓰러졌고
누나는 아이를 낳은 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
누나는 털실로 스웨터 짜는 일을 잘했는데 그래서
방 여기저기 색색의 털실 뭉치들이 굴러다녔는데
그 실처럼 가늘고 긴 세월 동안
눈물의 끈으로 나를 묶어 끌고 다닌 이는 누구일까
노래를 보내 이 세상이 얼마나 슬픈 곳인지를
알게 한 이는 누구일까
슬픈 노래를 내 핏줄 속에 흘려 넣어
밤이면 창가에 나를 한참씩 세워두곤 하는 이는