시,수필
나무에 기대어 약속하다
subook
2025. 3. 18. 19:13
문현미
찬바람이 이쪽, 저쪽 가리지 않고 분다
바람의 뒤축을 좇아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낙엽들
뺨을 후려치는 바람의 갈퀴를 붙들고
꿋꿋이 서 있는 나무의 결심을 잠시 빌린다
추락할 때는
중심을 잡고 사뿐 우아하게 떨어질 것
짓밟힐 때는
너무 아작아작 밟히지는 말 것
누구를 따라 가더라도
영혼 없이 무리지어 휩쓸려가지는 말 것
고개를 숙이더라도
비에 젖은 가랑잎처럼 되지는 말 것
쓸쓸함이 이스트처럼 부풀어 오르더라도
붉고 노랗게 물드는 가슴을 유지할 것
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더라도
안녕—이라는 다정 한 움큼을 잊지 말 것
그래도 어쩔 수 없는
못난 짐승 한 마리 내 속에 살고 있어서
자꾸만 꿈틀거리고
자꾸만 바스락거리고
